동일시할 수는 없다. 구술자료는 포괄적으로는 ‘구술된 내용’이지만 일방적인 증언보다는 면담자를 대상으로 한 구술내용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회고록이나 전기류, 증언록은 증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를 구술자료를 이용한 성과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Ⅰ. 서론
1948년 일어난 제주 4․3사건은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사건 당시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복잡다단한 시대적 배경에 의해 사건 자체의 완전한 제조명이 어려웠던 점, 그리고 그 이해당사자들이 지금까지도 살아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 그
Ⅳ. 5.18 당시 외신언론의 보도와 그 평가
-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1980년 광주의 3일간 군대 만행으로 빚은 희생보다 더 큰 것은 없었다. 군대의 만행은 이내 7일 간의 광주 항쟁으로 치달았다. 한국의 거대 신문들은 광주 소재 (주)한국화약 창고의 다이너마이트 탈취 같은 시위자들의 과격한 행동
3) 언론인 조용수와 민족일보
언론인 조용수는 1930년에서 1961년까지 31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다. 경상 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연희대학교 정외과를 중퇴하고 51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재일거류 민단 간부로 활동하였다. 1960년 4.19 후 귀국하여 사회대중당에 입당하여 7.29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1980년 5월 21일자 신문에서 1면에 “광주일원 데모사태”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지난 18일부터 광주일원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를 조속한 시일 내에 평온을 회복하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계엄사의 발표문을 짧게 실었다. 이는 광주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