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설논쟁의 배경과 문제의식
주자학의 이론 구조에서 볼 때 心說논의가 갖는 중요성은, 주자학이 단순히 존재론적 논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심에 관한 논의가 현실의 윤리적 삶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심설의 정립과 함께 ‘거경궁리(居敬窮理) 거경과 궁리의 두 강
유중교도 리 중심적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도 역시 리와 기를 주(主)와 객(客), 존(尊) 비(卑),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 등으로 대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호학파에 속하는 기정진은 기호 학파의 ‘주기’론적 경향에서 벗어나 리 중심적 경향을 띨 뿐만 아니라, 마침내 리기일체관(理氣一體觀)
유중교도 리 중심적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도 역시 리와 기를 주(主)와 객(客), 존(尊) 비(卑),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 등으로 대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호학파에 속하는 기정진은 기호 학파의 ‘주기’론적 경향에서 벗어나 리 중심적 경향을 띨 뿐만 아니라, 마침내 리기일체관(理氣一體觀)
유중교, 유홍석, 이소응이, 원주에서 안승우, 강릉, 양양에서 민용호가, 전라도에서 기우만이 기의하는 등 의병항쟁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관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1896년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무너짐에 따라 단발령이 철회되고 전국에 선유사를 보내어 의병해산을 권유하자 유인석,이
유중교(柳重敎)의 지시로 경기·강원도 유생 50여명이 연명으로 소를 올린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일본이 군함을 앞세워 개항을 강요하고 불평등조약의 체결을 요구하자 양적(洋賊)의 실체가 바로 일본이라는 ꡐ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ꡑ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제3기는 1880년 10월 수신사 김홍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