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고려 시대의 향악곡은 고려사 악지에 속악이라는 이름으로 32곡의 이름이 적혀 있고, [세종실록]의 기록으로 보면, 조선조 초기에는 향악이라는 이름으로 50여 곡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라와 백제의 민간 속어로 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 문헌을 통해 이밖에도 많은 향악곡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가요가 전해지는 책들의 성격을 비교해 보자.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공통점
궁중의 제례 및 연향을 위한 목적으로 국가에서 편찬되었음
목판 인쇄본으로 대량 인쇄됨
차이점
음악의 원리, 용법, 기타 악기, 예물의 형체, 제법, 무도의 절차등을 그림과 글로 기록
단순한 가요집으
왕 9)에 문과(製述業)에 급제하여 1392년(고려공양왕 4) 3월에 정적인 정몽주를 제거하고, 그 해 7월에 이성계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등 역성혁명(易姓革命)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그리하여 그 해 8월에는 정안군(靖安君)에 봉해졌으나 정도전 등의 배척으로 개국공신(開國功臣)에 끼지도 못하고 세자 자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국악 또는 전통음악으로 불리는 음악 중에는 먼 상고시대부터 전해 오는 음악도 있을 것이다. 무속음악이나 농악 속에는 역사적 연원을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을 꾸준히 전승되는 음악이 있으리라 추측된다. 그런가 하면 전통음악 중에는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전해 온
음악적 요소가 융합된 예술양식이었으며 문학(시)과 음악이 분화 발전한 현대에서도 운율이 시의 본질적 요소가 되는 것도 바로 이에서 연유한 것이다.
문학과 음악의 미분상태(未分狀態)의 시조에 대한 해명으로 柳晩恭은 시조의 내용과 음조 및 형식을 규명하고 있으며, 신문학 이후 최남선은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