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되기 전까지 끝까지 항전하였으며 일부는 고종의 해산조칙을 거부하고 만주로 들어가 재기항전을 준비하기까지 하였다. 또 일부는 영학당 또는 활빈당에 편입되어 반침략 반봉건 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다수의 의병들은 을사조약 늑결을 전후하여 민족수호를 위한 항일투쟁을 재개하였다.
민족적 항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을사조약의 강요 소식이 전해지자 나라 안팎에서는 조약 무효와 친일 매국노의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와 자결, 그리고 침략 원흉과 매국노를 처단하는 투쟁이 줄을 이었다. 전국각지에서는 농민과 노동자, 해산군인, 유생들이 항일의병전쟁을 일으켜 국권회복운동
일본군의 증파도 요 청하였다. 마침내 7월 31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하세가와는 순종에게 ‘군대해산조 칙’을 재가하도록 강요하였다.
한.일 합방: 1910년 대한제국 멸망
2)국권 회복운동
1.의병 전쟁
A. 전기의병
배경)1894년 일제의 군사적 침략인 경복궁 점령사건을 시발로 하여 1894년 안동의병으
민족생존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조야할 것 없이 지식층사회에서 국정개혁과 구국책을 모색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상은 개화사상과 위정척사사상이었다.
2. 개화기의 국권수호운동
개화사상은 서구의 고학기술과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위한 구제도의 개혁을
운동가 매천 황현 열사
『매천야록』은 황현(黃玹)이 1864년(고종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47년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관한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한말의 비사(秘史)이다. 이 책은 원본과 부분으로 나눠지며, 그 내용은 대원군의 집정과 김씨 세도의 몰락, 대원군 집정 10년 간의 여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