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30년대는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동적 움직임이 도처에서 활개를 치던 시기이다. 이와 같은 세계사적 상황 속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조건이 한 걸음 더 악화되었다. 만주사변(1931)에서 중일전쟁(1937)을 거쳐 태평양 전쟁(1941)으로 확산된 일제 군국주의의 전쟁광적 에스
2.2. 이광수의 변절 및 친일 행각
2.2.1. 이광수의 변절
1917년 이미 무정으로 유명해진 이광수는 1919년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이를 갖고 상하이로 건너간다. 그러나 상하이에서의 독립운동의 속사정은 춘원 같은 천재의 눈으로 볼 때 근대화된 문명국가인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이광수(李光洙, 1892~1950.10.25) 호 춘원(春園)이고 1892년 2월 1일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했다. 이광수는 아버지 이종원과 어머니 충주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운과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가문의 몰락으로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서 1902년 11세에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두 누이동
1. 소설가 이광수란?
이광수 [李光洙, 1892~1950.10.25]
호 춘원(春園).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書記)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하였다. 이듬해 친일단체 일진회(一進
이광수는 한 때는 조선의 뛰어난 시인이고 작가였으나 친일파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 ~ 1950년 10월 25일)는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문학가, 시인, 평론가, 번역가이며 애국 계몽 운동가의 공로가 있으나, 최남선과 함께 거론되는 변절한 친일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