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응모친일행각
1937년 [조선문예회]참가
1938년 [조선명사 59인 각도 순회강연] 참가
1939년 배영 궐기 대회 황군 만세 선창
1940년 [국민총력 조선 연맹] 참사
1941년 [조선임전 보국단] 이사
1941년 [임전 대책 협의회] 위 원
1941년 [채권 가두 유격대 참 가] 일제의 전쟁 채권을 강매
친
최근 몇 년간 이승만 흉상 건립과 김활란상 제정, 홍난파기념관 · 이은상문학관 건립, 그리고 박정희기념관 건립 등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 등에서 보듯 친일문제와 관련하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친일파 후손들이나 기념관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아무런 문제
조선사회 : 제정일치의 사회, 농경사회, totemism, 선민사상의 성립
* 단군신화의 의의 : 홍익인간의 건국이념,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
③ 고조선의 사회
* 8조법금 : 반고의 「한서지리지」에 3개 조항만 전함
* 8조법금에 나타난 사상 : 개인의 생명존중, 사유재산의 인정,
장지연 기자, 오적단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총리, 김동인 소설가, 서정주 시인, 안익태. 홍난파와 방일영 조선일보 초대사주, 인촌 김성수 동아일보 초대사주도 이에 포함됐다. 11.8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식민지배에 협력한 친일인사와 그들의 행적을 담은 소위 친일
중심으로 친일세력이 형성되어 일본인들의 경제적 약탈과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다. 이들의 중요한 무리를 이루는 것은 일본에 유학한 유학생들과 사관생도들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들을 유학 보내 장차 국가를 부흥시키는 인재로 키우려고 했으나 오히려 매국의 첨병이 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