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권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도시명을 지어야 한다며 다투었고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각각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에 자리 잡고 서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들은 처절한 전쟁을 벌였고, 형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의 피를 바쳐서 로마는 탄생시켰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을 통치하기 이전 몽고족의 복식을 살폈을 때 가장 특이한 점은 남녀의 복식 사이의 구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몽고족은 기본적으로 원대에 들어서기 이전에는 짐승 가죽으로 된 모직물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은 다른 변방의 이민족들과 같다. 원나라 건국 이전 몽고족의 복식에
중국 후한 말기 호족 지주에 의한 토지겸병의 위기에 끊임없이 직면해 있던 농민이 황건적이 되어 일으킨 반란이다.
호족의 지원아래 성립한 후한에서는 원래 황제의 권위가 취약했지만 제3대 장제까지의 60여 년은 안정기 였고 제4대 이후 아홉 명의 황제는 모두 15세도 되기 전에 즉위했기 때문에 모
이민족의 침략을 이민족 거주지역의 영구점령통치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근래 티벳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의 탄압은 식민지배를 겪었던 우리민족에게는 분노를 자아내게 했지만, 중국 당국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중국은 수 천 년 간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요
중국식 독재정치의 완성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독재정치는 장점과 함께 단점도 가지고 있어, 결과적으로 관료 집단에 대한 통제를 중심으로 한 그의 정책들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옹정제식 독재정치는 그의 사망으로 인해 종말을 고했지만, 지배 계급의 희생을 요구하는 그의 통치 이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