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럼 여성의 사람다움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여성들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시다는 표현을 가끔 듣곤 한다. 여성들이 몇 명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그 여성의원이 어떤 활약을 하고, 어떤 여성은 커다란 회사의 중견 간부가 되고, 어떤 여성은 좋은 소설을 쓰고…
박씨는 자신이 아들 월생을 낳았어도 전처 자식 월선을 시기하거나 모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 황어사가 월선과 월생에게 아들 딸 구분 없이 똑같이 재산을 분배하자 불만을 품고 월선을 미워하고 모해한다. 「장화홍련전」의 계모도 남편 배좌수가 장화의 혼인을 정하자 집안의 재물이 줄어
박씨전을 첫번째 에세이 과제로 선정한 이유는 박씨전이 교과서에 실려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박씨전을 보고 놀란 것은 처음 박씨전을 대할 때 이 작품을 납득하기 어렵고 무척 황당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이 작품은 소설의 개연성의 측면에서 무척 합당하지 않은 작품
Ⅰ. 고려 말 조선 초의 역사적 배경
고려사회에서 조선사회로의 왕조교체는 단순한 역성혁명으로서 왕씨왕조에서 이씨왕조로 전환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고려사회에서 조선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국가를 운영해가는 가장 최 정점에 있는 왕족의 교체만이 아니라 사회 운영의 주체세력의
(1)약전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고려 상장군 금용(金用)의 후손이며 덕녕부윤(德寧府尹) 안세(安世)의 8대손으로 증 이조판서 열의 아들로 명종 9년(1554)에 인동 남산에서 태어났다.
7세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 때 부친을 잃고 11세때 학자인 신당 정붕의 아들 정각(鄭慤)이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