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고유의 가치와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추구를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학문은 '위기지학'이라 할 수 있다.
(2) 퇴계의 교육
1) 교육관
오늘날의 국립대학총장에 비견되는 성균관 대사성의 책무를 맡으면서 퇴계는 그의 교육관을 밝힌 적이 있다. "선비란 예의의 원천이
자기 힘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비록 옛 성현의 글이라도 의심을 가지고 파고들어 재해석하는 학문 방법을 개척하게 되었다. 19세 때 <성리대전>의 첫권<태극도설>을 비롯한 두 권을 구해 읽고 나서는,"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솟아나고 눈이 열렸는데, 오래 두고 익숙하게 읽으니 점차 의미를 알 게 되어 마
의미는 결국 성(性)의 이(理)로 귀결된다. 또 도덕적 실천 근거로서는 인(仁)이 된다. 그리고 주자는 심(心)을 본체로서의 성(性)과 작용으로서의 정(情)으로 해석하였고, 심(心)의 작용의 두 가지 측면 즉, 미발(未發)의 이발(已發)의 사태에서 이치에 합치되도록 수양론을 세웠다.
주자학은 송대에 일어
인간의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우리들은, 예전에 비하여 많은 질병을 의료기술을 통하여 고칠 수 있게 되었고, 농업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기아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공해와
자기 학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서신을 보냈다. 이것이 ‘논사단칠정제일서’이다. 그 이듬해 1561년 고봉이 ‘제일서’에 대해 비판한 내용을 받아들여 “사단은 리가 발현함에 따라 기가 그것을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함에 따라 리가 그것을 타는 것이다”라고 수정했다. 이것이 ‘논사단칠정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