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을 세웠다.
주자학은 송대에 일어난 다양한 사회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학의 요청 속에서 이루어 졌다. 시대적 요구는 한유와 이고에 의한 송학의 발흥으로부터 시작되어 정학과 북송오자를 거치면서 사상적으로 발전해 왔고 이러한 사상의 흐름이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것이다. 주자는 공자와
주자의 이 말이 혹 기록자의 실수인지 어찌 알겠는가”라고 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는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의 논리를 계속 밀고나가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이므로 칠정과 마찬가지로 사단도 선악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당시의 성리학자들을 당혹케 했다.
“퇴계 고봉 율곡 우계는 모두 사단을
대한 관심이 새로워지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거의 [程朱學 절대 우위의 성리학]의 전개를 본 이것이 한국 성리학의 첫 번째 특징이다.
2. 主知主義 특징
정주학과 육왕학과의 차이는 대체로 전자가 주지주의의 경향이 강한 데 비하여, 후자는 主情主義의 경향이 강한 것이다.
성리학자들이다. 그들은 성리학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함에 있어 자연이나 우주의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성정(性情)과 도덕적 가치의 문제를 더 추구하였으니, 이퇴계와 기대승 및 이율곡과 성혼의 사단 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변(論辨)이 바로 그것이며, 그들은 이 논변을 통하여 이기성정론(理氣性
Ⅰ. 서론성리학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이것이 중국 宋에서 발흥할 무렵, 즉 고려 仁宗(인종)대를 전후한 시기(11~12세기)부터 알려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당시 고려에서는 송의 서적을 빈번하게 수집해 들였고, 외교경로를 통해서 윤언이와 같은 대학자가 송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