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탈로치의 양육과 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가정부였던 바벨리(Babeli)였다. 페스탈로치가 부친의 임종 후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게르트루트는 어떻게 그녀의 자녀를 가르치는가> 등의 교육소설을 저술하면서 모성의 위대한 교육적 힘을 찬양하였는데, 그 모델이 바로 바벨리였던 것이다.
교육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고아와 같이 먹고 같이 마시고 같이 자면서, 그 벌려진 고아들속에 깃든 하나님이 주신 찬란한 인간성의 힘을 발견하고, 그 힘을 키우는 교육에서 자기 사명을 발견하다. 이 때의 실천기록이 ‘쉬탄쓰 고아원통신’이다.
이후 그는 여러 곳에서 농민의 자녀를 위한 새교육
방향을 바꿨다. 노이호프의 빈민노동학원은 농민의 자녀를 올바르게 키워 이들을 통해 농촌을 개혁하고 농민을, 나아가서 조국을 구해보자고 세운 것이었다. 이 노이호프 시절에 그는 많은 저작을 남겼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그런데 이렇게 많은 논제를 그는 늘 교육적 시각에서 접근했
인간에 내재한 신의 영혼이 지니고 있는 자유롭고 지각적인 묵시가 상실된다고 했다. 또한 Pestalozzi가 주장한 어머니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깊은 가치를 느꼈으며 특히 유아교육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하다는 결정적인 확신을 얻어 자신의 교육철학을 통하여 `자발성의 원리`로 더욱 발전시켰
페스탈로치에게 고아교육의 책임을 위촉하게 되어 슈탄츠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게 된다. 이 고아원에서 그는 자신의 『은둔자의 황혼』에서 보여주었던 평등적 인간관에 입각하여 교육을 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적 주장을 실천적으로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즉, 도덕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