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진왜란, 그 혼란기의 광해군과 인목대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당시 조선의 왕은 14대 임금인 선조였다. 선조의 즉위는 16세기 초반 이래 지속되어온 훈구와 외척들의 척신 정치가 끝나고, 척신정치 시절 박해를 받았던 사림파들이 대거 조정에 진출하면서 바야흐로 정치판이 물갈이를
2. 광해군과 인목대비
(1) 광해군 1575(선조8)~1641(인조19)
조선 제15대왕. 재위 1608~1623. 이름은 혼(琿). 선조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공빈 김씨이다. 광해군의 비는 판윤 유자신의 딸이다. 의인왕후 박씨에세서 소생이 없자, 공빈 김씨 소생의 제1왕자 임해군 진을 세자로 삼으려 하였으나 광패(狂悖)하다
대비하여 후계구도를 확정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몽진하게 되자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밤 신료들의 인망을 얻고 있던 광해군이 갑자기 세자로 지명되었다. 광해군은 임란 중 탁월한 역할을 하였다. 흩어진 민심을 추스리고 와해된
1. 조선시대의 세자
차기 왕위 계승권자. 왕세자․세자․세자궁․동궁(東宮)․춘궁(春宮)․정윤(正胤)이라고도 하며, 저하(邸下)라는 존칭어로 불렀다. 기원은 왕위계승이 부자세습제도로 확립되면서 시작되었다. 태자는 부왕의 재위 기간 중 책봉의식을 거쳐 결정되는데, 자격조건은
서론
《계축일기》(癸丑日記)는 조선시대 수필형식의 기사문(記事文)으로, 《서궁록(西宮錄)》이라고도 한다. 1613년(광해군 5년)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일어난 궁중비사를 중후한 궁중어로써 사실적으로 서술한 글로, 묘사보다는 서술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