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은 인문주의였고 그들은 인문주의자로 불리게 되었다. 인문주의자들은 합리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의 조직화, 교역기술, 신용제도, 복식부기, 통치, 전쟁수단 등 여러 분야뿐 아니라 심지어 예술의 법칙까지도 합리화했다. 반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은 용납되지
수밖에 없었다. 이를 에라스무스는 매우 불쾌해 했으며 훗날 그가 국가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특히, 넉넉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교육 기회를 마련해주도록 요구하는 계기가 된다. 수도원 생활은 그에게 평온과 은둔을 제공했고 고전 라틴어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연구에 좋은 기회를 주었다.
인문주의자 플라비오 비온도(Flavio Biondo)에 의해 16세기 초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전재진다. 〈중세시대(MiddleAges)〉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1천년 동안이나 되는 기간을 고전 고대와 그 부활인 이탈리아 르네상스와의 사이의 공백기로 보고, 암흑의 시대로 생각했다. 그
사람 위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모든 것을 하느님 위주로 생각해오다가, 그게 무슨 소리야? 땅 위에 사는 건 사람인데, 음악을 만드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사람인데 사람 귀에 듣기 좋게 하는 것이 먼저지, 어떻게 하느님 먼저 생각해? 하는 태도인 것이다.
그전에도 교회
가능하게 해줌. 이는 내적 탐험이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와 더불어 근대로의 이행을 가속화시킴. 독일의 구텐베르크에 의해 1440년경 발명된 금속 활판 인쇄술은 동방에서 전래된 제지법과 더불어 인문학적 지식의 전파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이는 이후 종교개혁의 폭발적 확산에 공헌을 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