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했다. 1938년 선거가 다가오자 공산당(PC)과 급진당(PR)이 인민전선(Popular front)를 결성했고, 1938년에는 사회당(PS)과 민주당(PD) 그리고 칠레 노동자연맹까지 포함된 강력한 인민전선이 구축되었다. 이때 인민전선의 후보로 급진당의 아기레 세르다가 보수파 후보와의 접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인민공화국 수립 당시에는 정당·정파·인민해방군·기타 개인 등으로 구성된 인민정치협상회의가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을 탄생시킨 모체로서 국가권력기관의 핵심을 이루었으나 사실상 공산당의 절대우위가 인정되었고 1954년 이후에는 공산당이 정치권력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1949년 '공동강령'(임시
권력의 중추이자 가장 핵심적인 기관이다. 조선노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과업 수행을 규정하는 것이며 최종목적으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내걸고 있다.
당의 최고 지도기관은 당대회(黨大會)이
인민공화국 헌법>의 인민민주주의적 성격과 집단지도제적 권력구조는 1972년 헌법에서 각각 사회주의적 성격과 주석중심의 일인지도제적 권력구조로 변경되었다.
1972년 개정된 헌법은 북한이 사회주의국가임을 명시하고(제1조),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을 지도적 이념으로 하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함을 가지고 유훈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주력하였다. 우선 군부를 중심축으로 후계정권을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군의 저변을 장악하는데 역점을 두었으며, 군부 지도층의 권력서열을 대폭 상승시켰다.
또한 체제의 정당성을 김일성의 ‘유훈통치’에 두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