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의 일본정치를 분석함에 있어 헌법 제9조의 평화주의 조항과 더불어 일본정치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상징천황제'이다. 메이지(明治)헌법 하에서 일본의 주권자이자 통치권의 총람자로 군림하던 천황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존폐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
천황 칭호가 인정되지는 않았고, 또 9세기 중국에 견당사(遣唐使)를 보내 문물을 받아들였던 것을 보면 중국과 대등하려는 의식은 없었다고 보이지만, 국내적으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을 키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천황 지배는 645년 대화개신 이후 정치제도상으로 체제와 되어 300
Ⅰ. 개요
천황이라는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도교에서 우주지배자를 천황대제라 하였는데 일본이 7세기초에 중국 수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 황제라는 말에 대등한 말로서 도교의 천황대제 앞글자 두자를 따서 천황이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한다. 일반적으로 천황이란 도교계의 신명으로서 북극성을 신
일본 사회에서 '신(神)'의 자리에 올랐고, 식민지 통치와 침략 전쟁의 핵심이 됐다. 이 또한 일본이 세계 제일 우수한 인종이라는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나온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군통수권자이기도 했던 일왕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뒤에는 '천황도 인간이다'는 선언(1946년1월 국운진
기원전 660년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천황의 자리에 오르기 전, 형제와 아들들을 불러 놓고 동쪽지방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말했다. 이때가 그의 선조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온지 1백 79만 2천 4백 70년이 된 때라 한다. 이에 모두들 찬성하자 진무천황은 어느 겨울날에 부하들을 거느리고 배에 올랐다. 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