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물 소개
이동녕(李東寧)은 본관 연안(延安). 호 석오(石吾). 자 봉소(鳳所).로서 1869년 2월 17일 충청남도 천안(天安)에서 출생하였다.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하면 으례 임시정부를 떠올리게 되고, 또 석오 없는 임시정부를 생각하기 어려울만큼 그는 임시정부와 고락을 함께 했던 독립운동의 지
독립운동을 지원한다는 조약을 맺고 한인무관양성소를 설립하여 군사양성에 주력하였다. 이후 1939년 임시정부 주석으로 취임하고, 1940년 중경에서 광복군 총사령부의 직할군대를 조작하였다. 또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등 전체를 통합하여 한국독립당에 모든 역량
정부를 세워야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하여 민족의 지도자 수십 명이 국제 도시인 중국 상하이로 모여들어 임시정부를 세우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지사들 중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 등의 제의에 따라 프랑스 사람이 살고 있는 상하이 보창로에 임시독립 사무소를 설치하
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
동학농민운동을 하면서 ‘평등’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둘째는 반제국주의계열의 운동을 함으로서, 후에 치하포 의거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동학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안진사의 집에서 스승 ‘고능선’을 만나 차후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조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