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조선의 방위체계를 위하 군무사가 설치되자 이에 관한 업무를 주관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라도에서 모병, 군량조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594년 윤근수를 파견하여 세자책봉을 명나라에 주청하였으나, 장자인 임해군이 있음을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1608년 선조
충격을 주었다. 또한 일본뿐 아니라 명나라도 강화를 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벽제관전투에서의 패배가 명나라 조정에 큰 영향을 끼친 탓이다. 조선은 명나라의 강화책에 크게 반발하였으나 강화는 조선의 의향을 무시하고 일본과 명나라 사이에서만 진행되었다.
3) 진주성전투의 패배
임진왜란은 16세기 말엽의 동북아시아를 뒤흔들어 놓은 전쟁이다. 왜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7년 간에 걸쳤고, 침략자인 일본은 물론 왜군을 격퇴한 조선·명나라도 막대한 희생자를 내었으며, 전쟁이 끝나자 명나라와 일본에서는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쟁터가 된 조선
나라와 다른 점은 위국을 농업 국가로써 육성한 점이다.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선비족이 선조 대대로 지켜 온 부족제 조직까지 스스로 포기하고 유력씨족장 계층을 귀족으로 재편성) 중국의 농경문화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특히 중국 전통의 전제주의적 지배 방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방 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