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2년) 45세 정읍 현감 태인 현감 겸무 – 두 형 사망 조카들까지 부양.
.1591년 (선조 24년) 유성룡 천거, 전라좌수군절도사 좌수영 부임, - 거죽성 건조
.1592년(선조25년) 3월 27일 거북선 시험 – 임진왜란 발발(왜선 90여척 부산포 진격)⑤
.1598년 2월(선조 31년) 노량해전에서 전사.
2. 시대적
임진왜란하면 떠오르는 것에는 대부분 공통적으로 거북선, 이순신, 김명민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 이순식역으로 출연), 7년 전쟁 등을 꼽았고, 병자호란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청나라, 친명정책, 인조, 효종, 홍타이치, 남한산성, 후금, 강화도 등 다양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 두 난에 대
임진왜란은 1592년 (선조 25년) 4월 13일 부산포에 일본이 밀어닥치면서 발발하였다. 왜군의 선발대인 소서행장이 이끄는 1만 8천의 병력이 부산성을 공격해 오면서 7년 동안에 걸쳐 일어난 미증유의 대사건으로, 국내․외의 정세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살육과 파괴 등으로 얼룩진 임진왜
I. 연구동향
1. 일제강점기 일본측의 연구성향
일제강점기 일제의 어용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임진왜란사의 연구는 대부분 대체로 정치사와 관련된 것이거나 전투사에 치우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연구분야와 주제도 크게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의 의도는 일본인의 우월성을 과장 선전하고 조선인의
매일신보에 경고문을 발표하여 3.1운동을 비판한 공로로 1920년 후작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도 일본으로 부터 남작의 지위를 받았다. 1926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2. 두 역사적 인물의 삶의 원리와 조국애
2.1 이순신 [ ;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명장]
(1) 이순신의 가치관과 삶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