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매김했으며, 성종 때 간행된 내사본은 일본으로 전달돼 일본 농업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3) 간의대
경복궁의 경회루 북쪽에 설치된 석축 간의대는 천문을 관측하여 별의 운행과 변화를 기록하고 그 원리를 파악하는 곳으로 높이 6.3미터, 길이 9.1미터, 너비 6.6제곱미터의 천문관
세종 대왕의 특명으로 왕궁에 뽑혀가서 상의원 별좌, 호군등의 벼슬을 지냄. 각종 물시계,해시계등을 만들음. 하지만 1442년 장영실이 만등 왕의 가마가 부수어져 벌을 받고 벼슬에서 쫓겨남. 2007년 11월,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자격루의 복원이 이루어져서 일반 시민들의 관람이 시작되었
세종 (세월이 지날수록 빛나는 세종의 실용주의 )
이명박 당선자는 이런 관훈클럽에서 "생생지락(生生之樂)의 편안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평소 소신껏 일하다 일을 그르쳐도 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말로 세종의 철학을 참고했음을 암시했다. 이 당선자가 밝힌 차기 정부
장치하든지 하는 장엄이 있지만 이 돌다리엔 그런 장식이 없어 그저 무탈하게 조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한문을 들어오면서 이 다리에 대한 의식을 별로 가지지 않고 통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 하마비
대한문으로 들어와 돌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 왼쪽에 이상한 비석이 위치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에 뜻을 두고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으로 초성 17자와 중성 11자를 합하여 28자를 1443년 12월에 창제하시고 이듬해 2월 이 한글을 가지고 수양대군을 시켜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를 번역, 편찬했다.
여러 차례의 검토를 거친 후 1446년 10월 9일(세종 28년)에 반포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