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상/유홍준 』이 하마비는 원래 지금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닌 어디에선가 있는 것을 가지고 온 것일 것이다. 그 이유는 원래 신하들이 궁에 말을 타고 올 때면 궁궐의 문 밖에서 말에서 내린 후 와야 되지만 이 하마비는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석은 현재 쓰
세조 이후 조선에서의 제천의례는 거행되지 않았으며, 원구단 또한 한번도 논의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던 것이 400년이 훨씬 지나서 다시 건립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조선말 당시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조사보고서에서는 구한말
우리나라는 반세기동안 일제 강점기에 있었다. 500년간의 조선의 역사가 자취를 감추는 시기에 우리 왕조가 거처하고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한 덕수궁에 관하여 좀 더 알고, 역사적 조사를 통해 덕수궁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 조사하였다.
아직까지는 궁궐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복궁을 떠올린다.
어쨌든 애지문에서 모여 시청역으로 갔다. 시청역에서 내려 한 모퉁이 돌자 덕수궁 돌담길이 나왔다. 돌담길을 봤을 때 드는 생각은 ‘정말 아름답다.’이것 뿐이었다. 연한 연두색 파스톤 빛 돌담과 그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햇빛과 조화를 이루면서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처음
▒ 덕수궁(경운궁)은 선조 임금 때 궁궐로 쓰이기 시작하여 광해군, 인조, 고종황제께
서 거처하시던 곳으로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주 무대였으며, 궁궐로서는 유일하게
근대식 전각(석조전, 정관헌)과 서양식 정원, 그리고 분수가 있는 궁궐로서 중세와
근대가 잘 어우러져 있다.
▒ 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