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돼지와 술, 담배를 가져오지만 고인의 자녀나 가까운 가족들은 물소 한 두 마리 정도는 가져와야 한다. 특히 고인의 자녀들은 `의무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물소를 한 마리 이상씩 마련해야한다.
토라자인들의 장례식에 있어 물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례를 마친 고인의 영혼이 저 세
행한다. 이 때마다 집 마당을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판자를 박고, 판자에 ‘싸사까린’이라고 글귀를 새겨 고인의 명복을 빈다. 300일이 되면 친구와 친척들에게 연락하여 매장하는 장례식을 치른다. 만약 한 해에 가족 중에서 여러 명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 집은 일 년 내내 장사를 지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초적으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소간에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인 두려움을 피할 수 있는 만큼의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는 어떤 문화권에서도 흔하지 않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나도 언젠가 죽
사람들이 관을 어께에 매고 이동한다. 옮기는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관을 든다. 이곳에서는 관을 들어주는 것이 망자에 대한 예의다. 그래서 서로들 관을 지려고 관 밑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분주하다. 우리나라처럼 관을 이끄는 사람, 상여꾼 같은 것은 특별히 없다. 전체적으로 숙
사람의 경우에는 기일을 챙기고 떠난 이를 기억한다. 각각 다른 방식이지만 생일과 기일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구별 없이 찾아들며, 삶과 죽음은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강화시켜주는 존재 조건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생일과 달리 장례는 한 사람의 생명이 다 했을 때만 치러지는 것으로 고인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