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로 환원하였다. 공민왕 때는 원나라 사신을 가둔 일 때문에 부곡으로 강등되었으나, 다시 완산부가 되었다. 전주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게 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전주를 풍패지향이라고도 일컫는데 객사에도 풍패지향이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풍패지향은 풍패의 고향이라
3. 전주의 개요
1. 간략한 소개
전주시는 전라북도 도청소재지로 동경127˚ 북위35˚에 위치하고, 전라북도의 중앙부를 북동으로부터 남서로 뻗어 있는 노령산맥의 지류인 기린 봉, 고덕산, 남고산, 모악산 그리고 완산칠봉 등이 시가지의 동, 남, 서방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다.
전주시가지
이목대에도 고종이 친필로 쓴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가 새겨진 비가 오목대와 동시에 세워졌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모두 오래전부터 전주 시민의 휴식 공간이 되어 왔다.
오목대와 이목대 안내문
⑥전주전통한지원과 술박물관
전통 한지제조 기법이 오롯이 재현되는 전주전통
객사일대를 중심으로 전주의 전통 읍치경관을 답사하며 내가 사는 전주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장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왜 일제 침략기에 일본인들이 경기전에 소학교를 세우고 오목대와 이목대를 절단냈으며 심지어 용머리 고개를 절단 내어 길을 내고, 객사의 동익헌
전통사회에서 상류 계층의 주택은 신분과 남녀, 장유(長幼)를 구별한 공간 배치구조를 하였다. 즉, 집채를 달리하거나 작은 담장을 세워 주거 공간을 상ㆍ중ㆍ하로 구획했다. 상(上)의 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양반들이 사용했고,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행랑채는 하(下)의 공간으로 머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