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정치 형태가 무너진다. 이에 노론과 소론이 경종의 왕위문제와 장희빈 문제로 나누어지게 된다. 붕당정치가 변질되면서 정치 집단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왕권자체도 불안하게 되었다. 이에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국왕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이 제기되었다.
붕당 사이의 정치적 갈등은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박세채는 이러한 탕평에 입각하여 각 당파의 현명한 사람을 고루 등용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숙종의 탕평책은 명목상의 탕평에 지나지 않아 균형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았다. 예컨대, 공평을
맞이한 장희빈 이지만 그녀의 죽음이 있었기에 탕평의 기초가 세워질 수 있었고 후일 영조의 탕평책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장희빈이란 여인은 우리 역사에 여인으로서는 꽤 큰 획을 그은 인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노론에 의해 세제로 추대된 전력이 있던 그가 소론 임금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것이기에 소론 强硬派들은 영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론·소론의 당론에 처하여 생명의 위협까지 받은 뒤 1724년에 즉위한 영조는 바로 탕평정국의 서곡인 붕당의 폐해를 하교하였다.
영조가 탕평책을 절실히 느끼
Ⅰ.서론
조선왕조에서 가장 인간적인 왕이었던 정조, 그의 개혁정치는 다른 왕들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점을 토대로 하여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의 기본이념과 탕평책의 변화에 대해 공부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주제를 선택해 보았다. 탕평책의 등장배경과 영∙정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