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대의 정치상황과 장희빈
위 사건으로 인하여 소론의 거두들이 유배되거나 파면되었다. 조정은 다시 노론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세자 지지 문제를 중심으로 소론과 노론의 대립은 가속화되어 점차 대등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조대의 장헌세자 사건 이후 노론은 벽
숙종대의 왕비와 후궁의 갈등을 주제로 한 역사적 창작물 등에서도 인현왕후는 청초하고 인자하기만 한 인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평가들이 단순히 ‘희대의 요녀’라고 불리우는 장희빈의 반대편의 서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발생한 것은 아닌지,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정치적인 상황들이 인
상황은 표면상이라도 균형을 유지했던 붕당이 무너진 숙종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숙종 → 경종 → 영조 → (사도세자) → 정조
숙종은 자신의 두 여자를 매개로 남인과 서인을 번갈아 기용하며 왕권을 강화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두 세력: 남인을 대표하는 장희빈, 서인을 대표하는
상황은 표면상이라도 균형을 유지했던 붕당이 무너진 숙종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숙종 → 경종 → 영조 → (사도세자) → 정조
숙종은 자신의 두 여자를 매개로 남인과 서인을 번갈아 기용하며 왕권을 강화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두 세력: 남인을 대표하는 장희빈, 서인을 대
2. 즉위 후의 탕평책
영조가 즉위한 것은 정치권의 안정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권을 혼란 속으로 빠지게 했다. 그것은 바로 영조가 붕당에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조는 세제책봉에서부터 노론 세력에 의해 추대된 것이기 때문이다. 노론의 정치권의 장악에 영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