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고,신진 학자들을 왕실에 두어 왕권의 학문적 뒷받임을 이루고자 했다.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만드는 것 역시 왕권 강화의 일환이다. 수원을 새 장소로 옮기고 여기에 조선 최고의 성곽을 쌓고 또 장용외영을 화성에 배치한 것도 모두 왕권강화를 위한 정조의 원대한 구상중에 하나라고 할 수있다.
문을 내었다. 북문을 장안문, 남문을 팔달문, 서문을 화서문, 동문을 창룡문이라고 지었다. 장안문이 정문이다. 성문에는 각기 옹성을 쌓았다. 성문 밖으로 둥글게 겹으로 성벽을 쌓은 것이다. 그리고 네 군데 성문 외에 다섯 곳에 암문을 내었다. 암문은 일종의 비밀 출입구. 한편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화성은 드디어 지난 5월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록이 확정되었다.
화성 관리 사무소에서 나누어준 [화성 안내문]이라는 조그마한 팸플릿에 의하면 화성은 성곽의 전체길이가 5.52Km이며 거기에 동쪽으로 창룡문, 서쪽으로 화서문, 남쪽으로 팔달문, 북쪽으로 장안문 등 4대문을 내고 암문 4개, 수문 2개,
정조가 신도시 화성을 건설하고 여기에 새로운 성곽을 쌓은 진정한 동기였다고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의 의미]
● 역사적의의.
화성축성에는 국왕 이하 관료, 지식인, 예술가, 기술자, 일반 민인 등 모든 계층이 참여했고, 또 이 시설물은 중흥의 정점에 달했던 정조시대의 문화적, 과학적 역량
: 정약용의 유배
⑤ 양육자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남
: 조력자로서 성호이이과 정조의 도움을 받음
⑥ 자라서 다시 위기에 부딪침
⑦ 위기를 투쟁적으로 극복하고 승리자가 됨
: 수원화성축조, 실학의 집대성 및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저서를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