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옷과 손등을 핥았다. 연산군은 사슴을 걷어찼다. “짐승이 사람을 따르거늘 네 어찌 그리도 잔인하단 말이냐.” 성종은 장차 연산이 등극하는 날 벌어지게 될 참극이 연상되었다.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부왕의 사슴을 직접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희대의 폭군 연산
광해군의 삶을 비극적으로 몰아간 17세기의 초반은 역시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가 한번쯤은 반추해 볼 만한 역사적 교훈들을 무수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1) 역사는 승리자의 전리품
-광해군은 폭군인가?-
지금 광해군을 폭군이라고 하는 역사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군`이 붙은 왕으로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다. 하지만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먼저 연산군은 문란한 생활을 했으며 폭군으로 보고 있다. 반면 광해군은 오늘날 재인식되고 있다. 먼저 과거에는 광해군을 패륜을 자행했던 폭군으로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 광해군을
조선시대에 왕으로 즉위했으나 군(君)으로 강등된 임금은 노산군, 연산군, 광해군 이들 셋이었다. 이중 노산군은 후에 숙종에 의해 단종으로 복위가 되었지만 연산군과 광해군은 끝내 `군`으로 남았다. 역사상 폭군으로 일컬어지는 광해군, 그는 정말 『광해군일기』에 기록되어 내용처럼 폭군의 모습
연산군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2. 누가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역사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조선시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