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치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조선의 새 왕조가 고려 왕조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정치 체제로 갈 수 있었던 중요한 시점이 왕자의 난으로 무참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⑮ 개혁가이자 실천가로 이름을 남기다.
정도전은 여말선초에 이성계를 권력의 정상으로 올려놓기까지 이를 제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의 첫 개혁 상대는 기철이었는데 그 일당을 제거하자 그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고려에 쳐들어오기도 하였는데 이때 이들을 물리친 인물이 바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다. 그러나 공민왕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문세족의 갖은 술수에 결국 신돈은 반역 혐의를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첫째로, 안정복이 살았던 조선후기의 역사흐름과 인식을 정리하여 동사강목의 사학사적 위치에 대해 논해보고, 둘째로 안정복의 생애를 알아봄으로써 그의 동사강목 저술동기에 대해 검토해보고, 셋째로 동사강목의 체계와 주요내용을 통해 의의와 한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개혁파와 이성계, 정도전이 앞장선 급진 개혁 세력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대립은 우왕 14년 5월 이성계에 의해 단행된 위화도 회군이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신진사대부들이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갈등하게 된 것은 현실적인 대응방식의 이견에서 왔습니다. 즉 고려말의 신
백성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하고 선정을 베풀기도 한다. 1388년에 드디어 이성계의 추천을 받아 성균관 대사성으로 중앙 관계에 복귀한 정도전은 그의 생애 중 가장 화려한 시기를 펼치게 된다. 일생일대의 최고 후원자인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