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에서 조선 사회 신분질서의 특징적 면모는 바로 중인 계층에서 보이는 중간적 존재로서의 그것이다. 양반도 아니고 평민인 상인도 아닌 중인은 양반신분의 하락과 상인 신분이 상승하는 교차점에서 성립되고 있다. 조선사회에서 좁은 의미의 중인이란 의역(醫官, 譯官)중인을 근간으로 하는 기술직
시사를 문학운동의 기구로 삼는다거나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은 풍류를 즐기거나 문학수업을 위한 친모단체로 여겼다. 따라서 사대부들의 시사는 지속적으로 발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위항인(委港人)들의 시사는 사대부들의 시사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들은 신분제에
양반층의 생활공간을 의미한다. 강명관, 『조선 후기 여항 문학 연구』, (서울 : 창작과 비평사,1997), p.21.
그러나 이러한 동네에 사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 지는 분명치 않다. 조선후기로 내려가면서 양반보다 부유한 중인들이 많아졌으므로, 단순히 경제적 능력은 위항인을 정확히 개념 짓기 위한 잣
시사 및 중인층은 김정희의 학풍인 북학의 계승자로 혁신세력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들이 북학에서 얻은 견식을 바탕으로 서양세를 등에 업은 일본의 동태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음양으로 영향 행사
7) 요컨대, 중인층은 북학의 본류를 이어 한말에 이를 확산시키는 매개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북학의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