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이라는 계급개념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형성 시기는 중인 족보가 한말부터 소급하여 10대까지 추적되고 중인 스스로 삼백년 설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16세기 후반부터 세습화의 길을 걸어 17세기에 하나의 계층으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중인계층은 조선 사회가 임진왜란
문화를 부단히 받아들이는 일선의 역군이었다. 그러한 진취성이 병자수호조약의 체결에 측면작용을 하였고, 개항 후에는 일본을 통한 서구문명의 수용에 적극적 자세를 보인 개화파로의 전신을 가능케 했다. 또한 편저술 활동과 의술 등을 통해 수용한 선진문화를 사회에 전파시켜 계몽하는 역할을 하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된 동시에 우리 역사상 문화의 최전성기로 간주되던 시대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장승업이 활동하던 조선 말기는 서구열강의 침입과 더불어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한국적인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쇠퇴함에 우리 문화에서 점차 한국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쇠
한국사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역사 연구 방법
* 사회 경제 사학
1) 식민사관의 정체성 극복에 가장 유리
2) 한국사의 발전을 체계화하여 역사적 보편성을 강조하려는 역사 연구 방법
3)『우리 조선의 역사적 발전의 전 과정은, 지리적인 조건․인종적인 골상․문화 형태의
외형적 특징 등 다소의 차
후기의 한국 시에서 또 하나 주목되어야 할 시적 노력은 시조 부흥론이다. 주로 중인지식계층에 의해 명맥을 이어온 시조는 일본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한국적인 것을 발굴하고 지킨다는 명목 아래 한국 지식인들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지적 제스처에 불과하던 시조를 정당하게 예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