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반대에 대한 주기철의 행동은 그가 부산 초량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초량교회에 담임목사로 있던 1931년 초여름 경남노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사참배 반대안을 결의하였다. 이때는 신사참배가 공식적으로 강요되기 이전이었음에도 신사참배 반대안을 결의한 것
주기철목사를 살펴봄으로써 그 의의를 그려보고자 한다.
1) 신사참배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1910∼1945)에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Shintoism) 사원(寺院)인 신사를 곳곳에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강제로 참배하게 한 일을 말한다. 신사를 중심으로 천황도 신격화하여 자국 국민의 정신적 지배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
소양(蘇羊) 주기철 목사는 1897년 경남 창원군(지금 진해시) 웅천에서 주현성(朱炫聲)씨의 4남 3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1900년 가족과 함께 웅천 교회 교인이 되었다. 웅천 개통학교 졸업하고 정주 오산학교에 입학하였다. 오산학교에서 청년 주기철은 오산학교의 설립자인 남강
주기철 목사를 만나게된다. 부산 나병원교회에 전도사로 부임 울산의 방어진 교회, 남창교회 및 양산의 원동교회 등 개척 설립하게되고, 1935년 평양장로신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 신사참배가 결의 되던 해 신학교 졸업하게되지만 학교는 폐교되고 우편으로 졸업 증서 받는다. 경남 나병원교회에 부임하
2. 주기철 목사와 배형규 목사의 활동
1)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주기철 목사의 활동
(1)신사불참배 운동과 주기철 목사
본격적인 항거운동은 1938년 초 전국노회에 신사참배가 강요된 때부터 일어났다. 2월9일 교세가 가장 강하고 한국 교회의 지도인물들이 다수 있는 평북노회가 가장 먼저 신사참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