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조봉암, 일제강점기 당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했고 광복이후 사상 전향하여 민족주의자로서 정치인생을 걸었던 인물이다.
1956년 진보당 사건과 최근 통합진보당 사건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다만 그 형태가 비슷하고, 1956년 진보당 사건은 최근 2011년 재심 판결을 통해 새삼 주목받았
조봉암은 최초로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을 외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그의 삶의 행적이 현실정치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가 50년대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런점에서 조봉암의 사상과 활동을 쫓아가봄에는 나름대로 현세에 비추어볼 의의
조봉암을 참여 시켜야 한다고 하는 옹호론자들은 조봉암을 참여시켜야만 민주대동의 신당이 이룩될수 있고 수권정당이 될수 있다는 주장이었고, 그의 참여를 반대하는 조병옥ㆍ김준연ㆍ장면은 조봉암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반대파에 대해 조봉암은 〈신당운동에 호응할 터〉라
조봉암은 한 때 무정부주의에 기울어져 재일 조선인 사회운동 단체의 효시가 되는 흑도회(黑濤會)에 참여했으나, ‘아나키스트의 관념적인 유희’로는 일제와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볼셰비즘으로 전향한다. 장정일,「조봉암 : 우리 현대사가 걸어보지 못했던 길」『인물과 사상』74, 인물
조봉암은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 주오(中央)대학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박열, 신용우, 방한상 등과 비밀사상단체인 흑도회(黑濤會)를 창설하고 사상활동을 하였으나 흑도회는 얼마 가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1922년 여름, 조봉암은 주오대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