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운동에 호응할 터〉라는 제목의 성명을 1955년 2월 24일 발표하는데, 이것은 민국당 김성수가 조병옥, 김준연을 무마하기 위해 조봉암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정태영, 앞의 책, 221-223쪽. 그리고 장면, 김준연과 조봉암의 이념 논쟁은 이영석, 앞의 책, 204-207쪽 현신웅, 1992〈진보당연구〉, 한국정신문화
정치국민회의 등 6대 정당세력을 들 수 있으며, 이후 현재 참여정부의 열린우리당을 들 수 있으나, 그 밖의 정당들은 군소 정당에 불과하였다. 지금부터는 여당과 야당세력의 변천을 통해 우리나라 정당사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 여당세력의 변천
① 자유당(自由黨, 1951. 12. 23 ~ 1961. 5. 16)
Ⅰ. 해방 후 제 1공화국 성립까지의 정치상황
해방 후 남한단독정부 수립까지의 기간은 혼동의 기간인 동시에 우리민족에게 분명 기회의 기간이었다. 하지만 정치 지도부의 분열과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으로 인해 남북분단이라는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된다. 이 번 장에서는 해방 후부터 1공화국의
. 김구, 한독당은 임정법통론에 끝까지 매달리면서 비상국민회의(1946.2.1), 국민의회(1947.2.14) 등을 만들어 이를 중심으로 남한 정국을 풀어가려 했다. 한편 이승만, 한민당 세력은 독립촉성중앙협의회(1945.10.23), 민족통일총본부(1924.6.29), 한국민족대표자회의(1947.7.10)등을 조직하여 정국에 대응했다.
요구를 적절히 수렴하고 통제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집권세력 내부의 분열을 수습하지 못함으로써 정치적인 무능을 드러냈다. 갈등을 거듭하던 민주당은 1961년 2월 20일 윤보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구파가 신민당을 창당해 이탈함으로써 지배구조와 통치권의 이분화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