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있었다. 그 대상은 죽산 조봉암, 일제강점기 당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했고 광복이후 사상 전향하여 민족주의자로서 정치인생을 걸었던 인물이다.
1956년 진보당사건과 최근 통합진보당사건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다만 그 형태가 비슷하고, 1956년 진보당사건은 최근 2011년 재심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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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중반 진보를 표방하며 `책임지는 혁신정치`, `수탈없는 계획경제`, `민주적인 평화통일`을 당 강령으로 내걸고, `피해대중`을 위한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당. 좌익도 우익도 아인 제 3의 길을 걷고 자했던 조봉암의 일생과 더불어 탄생한 진보당은 그런 당이었다. 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진보당의 등록이 정부에 의해 취소됨으로써 진보당이 해체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정부에 의한 정당 등록 취소였고,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당 해산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정당이 해산된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향후 이 사건이 우리사회에 미칠 영향 또한 엄청날 것이다. 따라
진보당 대통령후보-조봉암」,사회평론, 1992
출옥 이후 인천미강조합 조합장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뚜렷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다가 1944년에 해외와 연락했다는 혐의로 예비 검속이 되어 해방되던 1945년 8월 16일에 다시 출옥하였다. 당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던 여운형이 바쁜 시절임에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