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은 1935년 8·1선언을 통하여, 만주사변 후 극심해진 일본의 중국침략에 대한 항일민족통일전선을 제창하였다. 1936년 시안[西安]사건, 즉 북방의 군벌 장쉐량[張學良]이, 공산당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독려하기 위하여 찾아온 장제스를 감금하였다가 극적으로 석방한 사건을 계기로 내전반대 ·
성립하였고, 중국 공산당은 러시아 혁명의 성공에 자극받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기관이었던 코민테른의 지도 아래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결성되었다.
1차 국공합작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요인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손문을 포함한 국민당 내부의 문제로서 진형명 사건이다.
이끌고 중국을 위협하여 무참히 짓밟았다. 당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구 문명에게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이 사건을 통해 남경조약을 맺게 되었으며 막대한 배상금과 홍콩을 영국에게 할양하고 상해를 비롯한 5개의 항구를 개방하게 된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그게 다른 한계와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또한, 실질적인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를 case study하며 분석해보고 앞으로의 소수민족 문제와 중국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 예측하고자 한다. 역대 중국의 소수민족관 및 정책을 근대 이전, 근대, 현대 등의
중국 역사에 대한 중국 자체나 기타 국가들의 시각을 발견해 나간다는 의미.
1840년이 왜 근대의 시작인가라는 질문은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며, 이를 생각해보면 근대라는 분류가 지극히 서양적인 관념임을 깨닫게 됨. (아편전쟁은 중국·서양 관계사의 한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