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에서 대단히 신비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朴, 昔, 金氏 세 氏性을 가진 왕들이 번갈아 가면서 나라를 다스렸다고 알려져 있는 신라, 그 중에서 필자는 신라 마지막 왕족인 김씨족에 대해 주목했다. 왜냐하면 이 김씨족이 바로 적석목곽분과 함께 갑자기 등장해 신라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세
유적과 유물들이 건축·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기에 이르러 왕과 귀족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정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892년 견훤이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태봉(처음 이름은 후고구려)을 세움과 함께 후삼국 시대가 시작, 양국의 공세에 버티지 못한 신라 경
이사금 10년이라고도 함)부터 신라로 개칭․발전하였는데, 건국 이후 992년간 신라의 왕도 역할을 하였다.
고려가 신라를 합병한 935년(태조 18) 처음으로 경주라 불렀으며, 940년(태조 23) 영남지방의 행정 관청인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바꾸고, 유수사
고구려의 궁궐유적지로는 국내성의 궁궐지와 만주통구지방, 청암리 유적지, 평양 대성산 부근을 들 수 있다.
국내성과 안학궁성은 왕을 비롯한 통치 집단의 정사(政事)와 일상생활에 필요한 건물과 시설물만을 갖추었다. 일반 백성들은 성 밖에서 살았으므로 성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평원왕 28
신라국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6부 집단에 대해 왕실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철제 농기구의 대량 보급, 우경(牛耕) 등 향상된 농경기술의 보급, 수리시설의 확충 등에 의해 생산력이 증대되어나갔다.
대외적으로 신라는 4세기 말~5세기 초 고구려의 남진에 따라 일시 고구려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