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읍 관덕정 마당에서 3·1절 28돌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위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쏘아 6명의 희생자를 내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제주도 3·1사건대책 남로당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제주도청을 시발로 민·관합동총파업이 단행되었고 166개 기관단체가 파업에 가세하였다. 미군정은 3월 7일 계
지역의 피해까지 감안해 피해자의 수치를 추정해 보면 남한에서 미군에 의한 피해 학살자의 수는 적게는 1만여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를 것이다.
ㄷ. 한국전쟁 후기의 학살
학살은 제 2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후방지역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남한의 경우 빨치산 활동이 왕성했던 지리산 등 산간지
빨치산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2달여 만에 발생한 여순사건에서 본격화되었다. 10월 19일 제주도 파병과 군내 좌익제거인 숙군에 반대하여 여수 주둔 제14연대 병사들이 봉기하였다. 당시 신무기였던 미제 M1 소총으로 무장한 반란군은 정부의 진압군이 여순지역으로 들어오기 전에 인근의 지리산,
제주도 4.3 사건과 함께 해방 이후 최대의 무장 반란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한 기층 민중까지 가담하여 6.25 이후까지도 계속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태백산맥>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2부는 여순 반란의 실패와 그로 인한 입산, 빨치산의 유격전과 군경의 토벌 작전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었다.
4.3특별법은 명칭 그대로,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것을 입법취지로 하여 제정되었다. 희생자 위령 사업(위령묘역 조성, 위령탑 건립, 4.3사료관 건립, 위령공원 조성, 기타 위령관련 사업)을 정부가 지원할 것도 미리 규정해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