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원로 지도부도 동요,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당과 국가의 초기 대응에 혼선(시위사태 장기화, 확대초래)
-자오쯔양 총서기 방북
-보수파 리펑총리가 덩샤오핑과 당 원로들의 경각심 자극
-학생운동을 ‘동란’으로 규정하는 4월26일『인민일보』사설「동란을 철저히 반대한
덩샤오핑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탄생시켰다.
2. 1989년의 천안문사건
톈안먼 사건(중국어 간체: 天安门事件, 정체: 天安門事件)은 1989년 6월 4일, 후야오방의 사망을 계기로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한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군을 동원해 무력 진압한 사건이
, 9시경에 이르러서는 광장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잠시 후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자금성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1만여 명의 노동자 민병, 공안, 인민해방군은 일제히 출동하여 군중들은 닥치는 대로 때려눕혔다. 당시 중국 전역과 전세계에 충격을 준 ‘제1차 천안문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중국의 시위사태가 후야오방의 사망을 계기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보다 근본적으로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실용파가 집권하면서부터 추진해온 개혁·개방정책이 중국인의 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제반 정치·경제적 부작용도 양산함에 따라 정부에 대한 불만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 불만은 중국 공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