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의 종국
(1) 한일 국교조정과 청일 수교: 메이지 일본의 복고 외교
○ 한일간의 국교 조정 문제
1868년 일본의 왕정복고로 천황의 수중에 정권이 돌아감 ---> 일본의 대외관계는 조정이 필요해짐.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서방 각국 간의 관계는 문제가 없었음. 왜냐하면 그 관계는 이미 국제사회에
국제체제의 정치적 구조형성에 가장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동북아 지역체제의 정치적 구조는 영국과 러시아간의 세계적 대립구도가 지역적 차원에서 재생산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일본고 청, 그리고 조선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친 ‘공로의식’은 모두 이 같은 영국과 러시아 대립구도
국제질서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거문도 사건의 의미는 19세기 후반 세계적 차원에서 대결하던 영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충돌함으로써 전통적 동북아 국제질서의 와해를 심화시키고, 조선을 본격적인 국제정치의 틀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청과 일본과의 대립은 물
조선책략의 내용- 조선책략, 조항래의 글을 중심으로
조선책략은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되어 허위장, 황쭌센으로부터 전해받은 일종의 외교의견서이다. 청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국제질서에 대한 조선의 책략을 제시하고 있다. 책략의의 내용은 실로 오늘날의 국제질서의 관념에서 본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동아시아의 세력관계에 도전하며 지속적인 팽창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반면 중국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이해가 극히 미약하였고 제국주의 침탈의 위기 하에 나라를 보존해야하는 과제를 청조가 적절히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근대화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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