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군태수여구효등 성야왕원 나지여구효등 균불봉명 좌청휴양실수 장순 허원 선후순의
殉義:義를 위하여 죽음
당시 일찍이 초군태수인 여구효등은 야간에 구원을 가서 어찌 여구효등이 아직 어명을 받들지도 못하고 앉아서 휴양이 수비를 못하고 장순과 허원이 선후로 의리에 순국함을 알겠는가?
及
초군이 중심이 되어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농민들은 1862년의 초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모의를 하여 드디어 2월 14일 서쪽 석산 장시에서 항쟁이 시작돼 농민들은 읍내까지 나아갔다. 농민들은 그동안에 그들을 수탈하던 목과 병영의 서리들을 처벌하여 문서를 태우고 양반가와 부 호가를 부쉈다. 농민항
초군이 중심이 되어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농민들은 1862년의 초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모의를 하여 드디어 2월 14일 서쪽 석산 장시에서 항쟁이 시작돼 농민들은 읍내까지 나아갔다. 농민들은 그동안에 그들을 수탈하던 목과 병영의 서리들을 처벌하여 문서를 태우고 양반가와 부 호가를 부쉈다. 농민항
초군이 중심이되 농민봉기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진주에서는 환곡이 문제로서 전임 수령과 향리들이 환곡을 포탈해 창고에 남아있지 않아 전주목사 홍병원은 이를 채우려 향회를 열어 토지 1결당 6냥 5천씩을 부과하기로 하였다. 이는 우병영의 재정도 환곡으로 운영되어 우 병사 백낙신은 우병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