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 일행은 절강지방 주민들에게 왜구로 오인을 받아 주민에 의해 관아로 호송하던 중 물품을 뺏기고 구타당하는 등 갖은 고생을 겪다가 명나라 관리에게 인계된다. 절강성의 도저소, 소흥, 항주에서의 세 차례에 걸친 심문을 받고나서야 왜구의 누명을 벗은 후 조선으로 송환되는 절차를 밟기 위해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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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전성기(진 흥왕~진평왕, 한강 점유)
7세기
여․수전쟁(612)
여․당전쟁(645)
백제의 멸망(660)
고구려의 멸망(668)
※ 부여의 대가(마가, 우가 등) 나 고구려의 대가(상가) 는 삼한의 견지와 읍차와 같이 최고 통치자는 아니었다.
2. 삼국시대
1) 국가의 분류 : 고대국가
식민지시기의 여인들이 잡혀갔다면, 고려?조선
시대의 여인들도 공녀사냥꾼들의 마수에 걸려들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수천명의 어리고 아리따운 처녀들이 원?명?청나라 땅으로 끌려갔다. 낯설고 물설은 타국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우물에 빠지거나 스스로 목을 매어 끝까지 저항한 처녀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