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식민지 지배는 일본인 대신에 조선인 친일파가 대신해서 이어왔다는 점에서 물적, 인적으로 식민지배체제가 그대로 지속되어왔으며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
그들이 말하는 공로란 다름 아닌 독재 권력에 편승 기생하여 자기 부정축재를 보존하고 특권을 행세하며 민주화를 훼방 놓은
1990년대 이후 친일문제를 지식사회로부터 대중사회로 연결시키는 데 있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친일청산운동에 앞장서 나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모두를 주역으로 삼아 '친일파' 처단과 '진상 규명'에 대한 강고한 투쟁을 계속하여 나갈 것을 바라며 결론을 마친다.
친일파라고 한다.
한민족은 1945년 해방되고 나서 바로 친일파를 법에 의해 심판하였어야 했다.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었던지 그 후 일제의 권력에 빌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렸거나 독립을 방해한 자들은, 일본이 쫓겨난 마당에 심판을 받는 것은 순리였다. 그리고 나라 찾는데 앞장섰던 독립 운동가들
일본 안에서 근대 사학이 발전하였다고 하여 국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연구가 완전히 타파된 것은 아니었다. 에도 시대 국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주장을 일제는 한국 병탄을 합리화하는 이념으로서 내세웠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직후에 일본의 학술지 역사지리에서는 당시 일본의 역사 학자 대부
세력들은 열강의 힘에 기대어 정치권력을 유지하거나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친일' 성향의 집단 역시 그같은 세력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식민지화 이전의 시기에 친일파를 반민족적 집단으로 매도하려면 친미파 등도 마찬가지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지금도 정서적으로, 정치적으로 친미, 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