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정책은 시대가 요구한 자연스런 따름이라고 본다. 이미 거대해진 로마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여러 곳의 분란을 막고 주적(主敵)을 한정지어야 했다. 최고 결정권자는 황제 하나인데 반하여 처리해야 할 지역은 광대하며, 더구나 순서대로 쳐들어오는 것이 아닌 동시 다발적으로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어 서유럽 문화권 성립의 기초가 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갈리아 정복
줄리어스 시저 (기원전 100년 또는 102년 7월 13일 ~ 44년 3월 15일)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장군, 작가이다. 그는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 Gaius Julius BC 100.7.12~BC 44.3.15)
시저라고도 불리우는 이 남자. 솔직히 지금껏 나에게서 시저라는 사람은 영화나 책 속에서만 등장하였던 수많은 영웅들 중의 하나였으며, 솔직히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였고 알고 싶은 생각도 그리 많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로마인은(인도-유럽족) 그리스인과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인 부족과 함께 기원전 2000년경에 이동하여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갔다. 로마는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인이 직접 지배했지만 기원전 5세기에는 에트루리아인의 지배가 무너졌다. 이어 동료인 이탈리아인과 경쟁을 했는데 기원전 3세기전반까지
로마인이야기"(한길사 刊)는 2000년전의 역사 상황을 오늘 우리의 눈 앞에 재현시키고 있다. 제4권과 5권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난세와 인물'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부르크하르트는 '세계사에 관한 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인물의 존재는 세계사의 수수께끼이다. 역사는 이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