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가요의 개념
고려시대에 창작된 시가(詩歌)로 주로 민중 사이에 널리 전해진 속요(俗謠)를 뜻한다. 넓은 뜻으로는 고려시가(高麗詩歌) 모두를 포함하며 고려가사(高麗歌詞) ․고려가요(줄여서 麗謠), 또는 고려장가(高麗長歌)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그러나 좁은 뜻으로는《한림별곡(翰林別
별곡西京別曲과 정과정鄭瓜亭, 처용處容과 같은 당시 백성들의 구전 가요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원작의 감정을 고도로 함축해 간결한 악부시 형식에 옮겨 놓았다.
소악부에서 이제현은 창작의 사실주의적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악부시가 서경별곡西京別曲과 탐라요羅謠 등에서와
탐라 및 민생고를 반영하고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기 위해 제작된 애민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③ 불교계 향락주의에 대한 비판 : 고려의 국호를 폐하고 원의 성을 두어 직속령으로 만들려는 입성 책동, 심양왕을 고려왕으로 봉하려는 터무니 없는 노력들을 일삼으면서도, 불교행사와 연관하여 끝
별곡>의 작가인 허강(許橿)이 1541(중종 36)년에 아버지 허자(許磁)를 따라 중국을 다녀온 체험을 토대로 창작한 시조 2수이며 그의 문집인 『송호유고(松湖遺稿)』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정철이 1593(선조 26)년에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어 『연행일기(燕行日記)』가 전하고 있으며 이
소악부 17편 가운데서 우리말 가사도 함께 남아 있어서 서로 대조해볼 수 있는 것은 ‘처용가’, ‘정석가’, ‘서경별곡’, ‘쌍화점’의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는 네 편이다. 또『고려사』 악지(樂志)에는 소개되어 있지만, 우리말 가사가 전해지지 않는 소악부 7편이 있다.
2) 소악부의 형성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