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문관을 쓴 자는 서리도 남김없이 죽이라는 두 차례에 걸친 문신의 대량학살을 감행한 정중부의 난은 삼경, 사도호, 팔목으로부터 전국의 군현, 관, 역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리에 무인을 임용했다. 시일이 지남에 따라 행정을 담당할 새로운 문.사의 기능인이 필요하게 되고 최충헌이 정
우리나라 문인 중에서 익재(益齋) 만큼 높이 평가받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유성룡은 익재를 가리켜 ‘덕행, 공업, 문장의 삼불후를 갖춘 인물’이라 하고, 김택영은 ‘조선 삼천년 이래의 대문장가’, 이색은 ‘도덕의 우두머리요, 문장의 宗이다’ 라고 극찬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1. 속악가사의 성격
<고려사> 악지(樂志)에 소개되어있는 고려의 악은, 국가에서 관장하며 궁중에서 전승하는 것만 거기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악은 음악 자체만이 아니고 춤ㆍ놀이ㆍ말로 된 노래 등을 두루 포괄하는 복합체라는 두 가지 점에서 예사 음악과 다르다. 중세의 지배체제를 장식하는 국
소악부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고려속요
1. 고려속요의 범주
속요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고려시대의 노래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헌에 실린 작품 가운데 고려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노래들을 모아서 따져야 할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중요문헌으로는 『고려사(高麗史)』,『
④憂國衷情과 抗日의 노래
19세기로 접어든 조선은 국론이 삼분오열하며 결국 경술국치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위태로운 조국의 현실을 표출한 대표적 문사는 강위, 이건창, 황현, 김택영으로 이어지는 韓末四家들이다. 그 중에서도 강위와 이건창은 아직 망국 이전의 인물이라서 우국충정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