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1-1. 일제 강점기 호남에서의 민중운동
정순제,「호남종횡관(湖南縱橫觀)」: “전남은 과거 갑오운동과 현금의 농민운동의 진원지로서 무산의 소작인들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약자의 무기는 오직 단결뿐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면 단위로 노동단체를
세종은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원래는 왕위를 물려받지 못해야 정상이나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의 행실이 바르지 않고 수성의 군주로는 충녕대군인 세종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태종에 의해 왕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 적장자 상속원칙에 따라 반대가 심했으나 택현론
택현론’의 원칙에 따라 조선 제4대 임금으로 등극했다. 왕이 되기 전부터 국가의 흥망, 군신(君臣)의 사정(邪正)· 정교(政敎)· 풍속(風俗)· 외환(外患)· 윤도(倫道) 등 각 방면에 걸쳐 국가경영에 참고가 되는 서적을 두루 섭렵했다. 분과형 학습이 아닌, 통섭형 학습이었다.
세종은 ‘선행학습’을 통
론,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버지 태종 또한 어찌 보면 택현론을 주장하여 왕의 자리를 올랐다는 사실은 후임자 선정에 있어서 자신한테도 한번쯤은 기회가 올 수 있겠다는 것을 이미 충녕이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사실이야 어찌 됐든 충녕은 끊임없이 준비했고, 결국 세자
론국사 성수루하
소란은 몰래 그를 꺼리지만 외부로는 거짓으로 충성을 표시하여 매번 소란과 국사를 담론하는데 소리에 따라 눈물을 흘렸다.
?不知有詐, 還道他是心口相同, 本無?意;
장부지유사 환도타시심구상동 본무알의
소장은 사기임을 모르고 다시 그가 마음과 말이 같아 본래 나쁜 뜻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