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발표에서는 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고고학적 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함.
Ⅰ. 고대국가와 연맹체를 구분하는 기준
문헌사적인 측면:
율령반포, 불교수용, 부자상속, 정복전쟁 등
고고사적인 측면:
통일된 유물양식(묘제, 토기)
*영남지역의 특수성: 철기문화의 흐름
양식(묘제, 토기) *영남지역의 특수성: 철기문화의 흐름
Ⅱ. 가야 내의 묘제, 토기양식을 중심으로
1. 묘제
◆ 삼국시대 각국이 고대국가로 성장하던 과정 중에서 발생하고 전개된 물질문화 현상 중 대표적인 것이 고분군의 형성과 전개이다.
◆ ‘고분군’이 형성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인간집단
토기의 구멍 뚫린 높은 굽다리는 진흥왕 때부터 낮아지기 시작하고 굽다리의 구멍도 작아진다.그리고 그릇의 표면에 녹색 유약을 바르는 녹유(연유)토기도 만들어진다. 이러한 토기들을 통일신라의 토기와 구분하여 통일양식의 토기라고 부른다.
이시기에 있어서의 토기는 고신라 토기의 태토나 소성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士器]로 양식에 있어서 함북지역과 기타 지역의 2가지로 구분되며, 유사성도 있으나 차이점이 더 많다. 황해안과 남해안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결이 고운 사질토(砂質土)에 활석과 석면을 보강제로 섞었고 무늬에는 대개 사단선무늬[斜單線文]․ 어골무늬[魚骨文] 등이
토기설명 : 여기서 발굴된 뾰족밑 토기와 납작밑 토기는 각각 남부, 북부지방의 양식이다.
그동안 북서지방은 출토된 토기가 많지 않았는데 오산리에서 뾰족밑 토기와 납작밑 토기가 함께 출토됨에 따라 주목받았고, 현재 오산리를 포함한 청천강 이북지방에서 대체로 이러한 토기들이 함께 출토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