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같은 이유로 아랍 인들에게도 맥마흔 선언(아랍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한 선언)을 맺고, 팔레스타인 내 아랍인 거주 지역의 독립을 약속하였다. 이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두 민족의 대립이 격화되고, 팔레스타인이 분할되어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국가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신생국가는 건국의 근거를 국제 사회의 다수의 의지와 아득히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권리에서 찾았고 팔레스타인에 고국을 재건하는 것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신의 약속을 실현하는 것이며 2000여 년 전의 국가멸망 곧 ‘민족이산’이란 비극의 원상회복에
영국이 1921년에 6개월 간 매달 5천 파운드의 보조금을 압둘라 아미르에게 지급하여 건설된 것이었기 때문에 요르단은 영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전쟁행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요르단 군과 이스라엘 군 사이의 전투는 유엔 분할안이 아랍국가 영역으로 명시한 팔레스타인
요르단 등 이슬람 국가들과의 전쟁, 즉 1~4차 중동전쟁을 치르게 되고 뮌헨테러를 비롯한 여러 테러, 이들을 격멸하기 위한 폭격 등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2. 뮌헨 테러의 정리
1972년 9월 5일 이른 아침, 올림픽 회장 내 선수촌의 이스라엘 선수 숙소에 무장한 검은 9월단 멤버 8명이 난입했다.
이스라엘국가의 창설을 선언하였다. 이를 뒷받침 하듯 이스라엘국가 건설 선언 다음날인 5월 15일에는 미국, 나흘 후인 5월 18일에는 소련이 이스라엘을 공식적인 국가로 승인하였다. 이러한 미국과 소련의 입장 표명과는 반대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주변 아랍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