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것은 음악을 교육 과정으로 들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까지의 초기 교육 과정으로서 음악과 체육을 강조하는 것이며, 음악에서 체육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선량한 영혼이 선량한 육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또한 플라톤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죽은 후에도 후세 사람들에게 그에 대하여 증언하고 사색하도록 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해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죽어간 그것 때문에 그를 영원히 위대한 철학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이전, 자연철학자의 사상은 이 우주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인간적 능력의 한계를 무한정 확장시킨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자연계의 모든 대상의 근저에는 그 원형인 '관념'이 고차원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는 이런 것들에서 정확한 학문과 내적, 정신적인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류학을
인간적, 국가적 옮음을 규정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교육을 거론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에밀은 소극적 교육관을 역설한다.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교육을 가장 잘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루소가 보기에 교육을 통해서 인간은 그 진실 된 자아를 점차 상실하고 타락된 모습, 가면을
큰 사회적 개량의 원동력이 되었다.
웨슬리 부흥운동의 사회적 조명에 대한 연구를 위해 본 소고는 먼저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전의 사상적, 교회적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운동이 필연적으로 치유해야만 했던 당시 사회의 일반적 문제점들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