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데아설(說)을 비판할 때 가한 해석인데, 그 뒤에도 이 해석이 답습되어 이데아는 보편개념의 실체화 또는 개념실재론이라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그러나 이데아론의 참뜻은 소크라테스의 애지(愛知) 속에 그 연원(淵源)이 있다고 생각된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아테네에 가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
플라톤이 죽자(BC. 348) 그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그 학파의 수장으로 임명받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아시아의 연안에 위치한 아쏘스로 옮겼다. 그는 헤르메이아스의 조카딸인 피티아스와 결혼하였다.
BC 342년경에 필립 왕으로부터 13세
아테네로 대표된다. 그리스 반도에는 그리스 민족이 침입하여 살기 전에 에게문명을 만들어 낸 선주민족이 있었다. 찬란한 청동기 문명을 지닌 에게인들은 왕을 받들어 모시며 교육을 하여 번영하였으며 견고한 성벽을 쌓아 시민과 시의 재산을 보호하였다. 그리스 민족은 이미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매일 만나면서 일상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크리톤이 탈출계획을 꾸몄으나 소크라테스는 거절했다. 판결이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 판결은 법정의 판결이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독배를 마셨다. 그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는 플라톤의 파이돈에 잘 기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