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는 필연이었다. 목적 없는 창조는 가상할 수 없다.
하나님께 있어서 창조가 필요하셨던 이유는 단 하나 참사랑의 이상이었다. 가장 간단하고 저급한 피조물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각각 주체와 대상, 양성과 음성의 쌍쌍으로 전개하신 이유도 사랑 이상 아래 상대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의로우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사람들을 심판하셔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유지된다. 이스라엘은 백성들 가운데 사는 약자들을 학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렘7:6-7; 겔22:7-16; 슥7:914).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압제한 이방 나라들에게 심판이 임했다(겔36:5). 예수
2) 사랑의 대상에는 제약이 없다 - 원수까지 사랑하라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구약의 가르침과 연결하여,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 다음으로 강조한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의 생활태도를 규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율과 계는 곧 기독교 윤리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율법의 목적과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증거하였으며 율법 자체가 은총에 이르는 길을 지적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입장인 것은 사실이다. 상술하면 예수는 율법주의를 배척하고 복음에 의한
의 주된 기능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를 분명히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율법은 그것을 깨뜨리는 자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다. 율법이 선고하는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악이란 그 근본에 있어서 자율이다. 하나님의 선한 서물인 자유 또는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뜻